170206 기고: 페미니스트를 위한 나라는 없다
페미니스트를 위한 나라는 없다
전문: http://ildaro.com/sub_read.html?uid=7761
<심미섭의 젠더 프리즘> 뉴욕 여성행진에 참여하다
뉴욕 여성행진이 한국에서 경험한 페미니즘 시위와 다른 점은 시위대가 다양한 젠더, 연령대, 인종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이다. 중장년 여성이 행진 선두에 서거나, 어깨에 아이를 올려놓은 부부가 참여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직접 만들어온 다양한 손팻말이 색색으로 거리를 메운 모습도 눈에 띄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모인 가족이나 친구끼리 박스 종이를 뜯어 기발한 문구를 쓰고 꾸며서 들고 나오는 모습이 쉽게 상상되었다.
트럼프 반대, 동일노동 동일임금, 안전한 임신중절권 보장, 퀴어 권리 주장 등 다양한 문구를 들고 모인 시위대는 맨해튼 도심을 점령하고 트럼프 타워를 목표로 걸어갔다. 오전에 시작된 여성행진은 두 시를 훌쩍 넘겨 해가 질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 차별적이고 반여성적인 언행으로 페미니스트의 규탄 대상이 된 트럼프가 취임 선서를 한 지 만 하루만이었다.
서울에서 미국의 페미니즘을 지켜볼 때, 나와 친구들은 미국 상황은 우리보다 훨씬 나을 것이라고 막연히 상상하였다. 물론 제도나 사회적 인식 차원에서 보았을 때 미국 여성 인권은 한국 여성이 처한 그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발전해 있다. 하지만 최신 페미니즘 이론을 익히고 인터넷을 통해 세계와 소통하며 자신이 발 디딘 사회를 바꿔나가려는 젊은 페미니스트가 마주한 상황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비슷하였다.
“보지를 움켜잡(grab her by the pussy)”으며 성추행한 경험을 자랑스럽게 떠벌리며, 여성 경쟁자에게 “추잡한 여자(nasty woman)”라고 욕하는 트럼프에 대항하는 것은 미국 페미니스트뿐만이 아니다. 우리 모두 트럼프‘들’이 내보이는 여성혐오‘들’에 맞서고 있다. 트럼프의 당선으로 세계의 페미니스트는 알아버린 것이다. 우리는 모두 비슷한 혐오와 싸우고 있으며, 페미니스트를 위한 나라는 없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