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302 북토크 발표: 우리는 어떻게 망할 것인가
2017년 3월 2일 『대한민국 넷페미사』와 『페미니스트 모먼트』를 읽고 진행되는 북토크에 발표자로 참여하였습니다.
발표한 내용을 공유합니다. 글이 길어 두 부분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1]은 『대한민국 넷페미사』에 대한 감상, [2]는 『페미니스트 모먼트』를 읽고 생각한 내용이 주가 됩니다.
[1] 우리는 어떻게 망할 것인가
안녕하세요. 페미니스트 정당 창당 준비모임 페미당당에서 활동하고 있는 심미섭입니다. 페미당당은 작년 총선 직후 한국의 어떤 정당도 페미니즘적 의제에 적극적인 관심이 없다는 점을 비판하며 만들어진 단체입니다. 이후 강남역 살인사건 규탄을 위한 거울행동, 반여성혐오를 위한 공동행동, 낙태죄 폐지를 위한 검은시위, 대상화와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운 페미파티, 낙태죄 폐지를 위한 오픈 세미나,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박근혜 정부 퇴진을 위한 촛불집회 내 혐오발언과 혐오문구와 여성에 대한 폭력 없는 페미존을 기획하였습니다.
오늘은 『대한민국 넷페미사』와 『페미니스트 모먼트』를 읽고 북토크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는데, 저에게 우선적으로 요구하시는 것은 독후감인 것 같아요. 그래서 두 책을 읽고 어떤 점을 느꼈는지를, 활동가의 입장에서 그리고 저 개인의 입장에서 각각의 책의 특성에 맞게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대한민국 넷페미사』를 읽을 때에는 “망함”에 대한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습니다. 이 책은 세 파트로 나누어져 있는데요, (이 행사에서 책의 저자를 말할 때는 경칭을 쓰지 않겠습니다) 권김현영 씨는 과거 영페미니스트의 흥망성쇠를 말해주었고, 손희정 씨는 영페미니스트의 영향을 받고 자란 자신이 2015년 이후의 온라인, 특히 트위터를 중심으로 한 페미니즘 흐름을 어떻게 파악했는지를 정리해 주었습니다. 박은하 씨와 이민경 씨는 저보다 약간 위거나 동일한 세대의 페미니스트인데요. 저와도 때때로 여러 행사에서 만나거나 협력하는 동료 페미니스트입니다. 이분들은 현재 각자 언론인과 출판인으로 활동하면서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를 주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정리하자면 『대한민국 넷페미사』는 제가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던 옛날 이야기가 하나, 제가 직접 경험하며 페미니스트로서 참여한 과정을 정리해주는 이야기가 하나, 저와 함께 활동하는 자매들의 이야기가 하나. 이렇게 세 역사가 실려 있다는 감상입니다. 그리하여 권김현영 씨의 글은 신기해하며, 손희정 씨의 글은 되짚어가며, 박은하 씨와 이민경 씨의 글은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왜 이 세 글을 읽으면서 “망함”을 생각했는지를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손희정 씨의 글에는 2016 여성회의에 대한 언급이 등장하는데요. 페미니즘 흐름이 망할 것을 두려워하는 “영영 페미니스트”의 말을 소개합니다. 이 사람이 아마 제가 아닐까 싶어요. 당시 상황을 좀더 자세하게 말씀드릴게요.
각 세대의 페미니스트가 모여 논의하는 자리에서 페미당당이 어떻게 활약하고 있는지 발표하고 박수를 받고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객석에서 한 분이 일어나 메갈리아 활동을 하다가 악플을 썼다고 고소당한 상태라는 말을 하셨어요. 어떠한 단체나 조직적 연대를 이루지 않고 온라인을 통해 활동하던 넷페미들은 무더기 고소를 당한 후 두려워하며 합의를 하거나 변호사의 조언에 따라 스스로 페미니스트임을 드러내지 않으며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너무 창피했어요. 페미니스트 레볼루션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며 페미당당하게 활동한다고 자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분명히 영향을 준 메갈리아 등 여러 온라인 플랫폼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은 그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산산이 무너지고 있었으며, 저는 그것을 전혀 알지조차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후 패널토크에서는 영페미니스트가 어떻게 “망하였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는 마치 권김현영 씨가 글에 정리하였듯이, 어떻게 넷페미로서의 영페미가 흩어져 버렸는가, 지금 그들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발언이었습니다. 영페미니스트의 이야기를 듣고 만일 지금 우리가 망한다면 무슨 일 때문에 망하겠는가 하는 고민을 했습니다.
그리고 생각이 번뜩 들어 발언한 바가 손희정 씨의 글에서도 설명되어 있듯이, 우리는 “꿘충”과 “메갈”이 소통하지 못하여 망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현재 오프라인에서 얼굴과 이름을 (본명이든 가명이든) 드러내고 활동하는 젊은 페미니스트는 사실 한줌에 불과합니다. 페미당당도 한 백 명 정도는 활동하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시는 분이 많은데, 사실 열두 명 정도가 근근이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저희는 워마드 등의 온라인 공간에서 운동권과 연대하는 “꿘충”이라고 비난받습니다. 오프라인에서 활동하는 페미니스트이지만 저는 트위터에 얼굴을 걸어놓고 활동하는 “트페미”이기도 한데요. 손희정 씨가 『대한민국 넷페미사』에 서술한 트위터의 이슈들을 저도 2010년부터 모두 겪었어요. 그렇게 저는 온라인 공간에서, 특히 트위터와 메갈리아에서 활동한 온라인 페미니스트 활동가에게 많은 도움과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들이 지금 이 페미 레볼루션의 배경이자 주역이라는 생각도 하고요. 그렇다면 이들과 어떻게 오해를 풀고 소통할 것인가에 대해 열심히 생각하는 중입니다.
여기까지가 손희정 씨의 글에 드러나 있는, 어떤 “영영페미”가 2016 여성회의에서 공유하였던 “망함”에 대한 생각이었고요. 이 책을 읽으면서 이번에 새로 들었던 “망함”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신자유주의와 “페미는 돈이 된다”, 그리고 취향과 미감에 대한 생각입니다.
권김현영 씨는 거대 기업이 자본을 투자하여 형성하기 시작한 인터넷 시장 때문에 기존에 있던 인터넷 여성 공동체가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서술하였습니다. 손희정 씨는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라는 구호를 “페미니즘은 파워가 된다”로 바꾸어 주장한 경험을 언급하였고요. 이민경 씨는 출판사 봄알람에서 출판한 두 권의 책을 소개하였습니다. 영페미는 신자유주의의 침투 때문에 망했습니다. 신자유주의, 혹은 포스트 신자유주의 세상에서 태어나고 자란 젊은 페미니스트는 오히려 이런 시스템을 거부감 없이 활용합니다. 크라우드펀딩 시스템을 통해 세련된 책과 굿즈를 만들어 파는 이민경 씨의 봄알람은 이런 신자유주의 이후 페미니즘의 일면을 잘 대표한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이 흐름에 저는 주목하였어요.
2016 여성회의에 참여해 들은 영페미니스트의 망한 이유 중에서는 신자유주의 얘기가 있었어요. 신자유주의의 물결과 함께 등장하는 여성혐오, 예컨대 이화여대에 스타벅스 1호점이 생기고 진보 언론에서조차 된장녀를 비난하는 여성혐오에 영페미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는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또한 언니네트워크를 운영하시던 영페미 한 분은 언니네가 급변하는 온라인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하였다는 점을 짚어 주었어요. 커뮤니티 중심의 온라인 문화가 SNS 중심으로 옮겨가면서 언니네트워크의 이용자가 확 줄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요. 저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이 두 가지를 서로 다른 두 요소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넷페미의 역사를 관통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이 둘이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게 되었어요. 바로 “자본”과 “취향” 혹은 “미감”의 문제입니다.
무슨 말일까요. 권김현영 씨의 글을 읽으면 과거 PC통신 세대에 있던 네트워크 공간이 거대 자본의 침투로 망해 버렸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 예로 “선영아 사랑해”라는 광고 이야기가 등장하고요. 이 광고는 메시지가 특별했다기보다는 형식과 미감이 특이해서 눈길을 끌었지요. 인터넷 보급 이후 급성장한 포털 사이트 또한 아기자기하고 화려한 디자인과 직관적이고 편리한 인터페이스를 갖추며 성장하게 되었고요. 물론 영페미 온라인 커뮤니티가 힘들어진 것은 운영 적자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세련된 미감과 간결한 인터페이스가 자리잡아가는 거대자본 온라인 시대 하에 넷페미로서의 영페미는 슬금슬금 망해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확 뛰어넘어 볼게요. 2016년에는 “페미굿즈”의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페미니즘 단체나 출판사 등은 페미니즘 메시지를 담은 뱃지, 에코백, 티셔츠, 책, 엽서 등을 팔아 후원금을 충당하거나 수익을 남기게 되지요. 이에 손희정 씨가 언급한 것처럼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는 말도 잠시 유행하게 됩니다. 페미당당의 경우 굿즈 판매를 통해 운영비를 충당하였을 뿐만 아니라 어떤 행사를 하든 최대한 예쁘고 세련되게 진행하기 위하여, 더 대놓고 말하자면 “힙하게” 하기 위하여 노력하였습니다. 단순히 포스터를 예쁘게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시위를 할 때도 퍼포먼스적 요소를 고려하여 어떻게 하면 간결하고 세련되게 우리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였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이런 세련된, 멋진, 그리고 힙한 페미니즘을 하기 위한 지금까지의 시도가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단적인 예로, 또래 디자이너 친구가 한 말이 떠오릅니다. “이전에는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촌스러운 인상을 떠올렸고, 홍보물도 너무 못생겼어. 그래서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말하기 좀 망설여졌어. 그런데 이제 멋지고 세련된 페미니스트가 많이 늘어났고, 나는 페미니스트인 것이 더 자랑스러워”라고 아주 솔직하게 이야기하였습니다.
물론 이런 식의 접근은, 즉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를 통해 얻은 세련된 취향자본을 활용하는 페미니즘 운동은 비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엘리트주의자, 스놉, 힙스터, 관심종자라는 비판이 항상 존재하지요. 이전에 그러했듯이 선의에만 기댄 후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파티를 열고 굿즈를 팔고 책을 만드는 시도는 신자유주의의 시장 논리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요.
변명하자면, 신자유주의와 세련된 취향은 서로 혼동될 때가 많습니다. 한국의 경우 그 둘이 동시에 찾아왔기 때문에 더 그럴지도 모르겠지요. 물론 시장은 대중에게 새로운 미감을 끊임없이 장착할 것을 강요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비록 그렇다고 하더라도 더 세련된 것, 더 예쁘고 멋지고 새로운 것을 찾는 흐름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런 세련된 페미니즘, 멋진 페미니즘은 지금의 페미니즘을 흥하게 할까요, 아니면 역풍을 맞고 망하게 할까요. 이것이 제가 요즘 하고 있는 고민이고, 『대한민국 넷페미사』를 읽으며 다시 정리하게 된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