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310 기록: 우리는 여기서 세상을 바꿨다

대통령 퇴진을 맞아: 페미당당이 운영한 페미존의 시작과 끝 그리고 그 후를 정리한 글
<우리는 여기서 세상을 바꿨다>💖

제1차 페미존에서 "학생들은 집에 들어가라"는 훈수를 듣자 확성기를 잡은 친구는 즉흥적으로 외쳤다. "아저씨나 집에 가세요. 우리는 여기서 세상을 바꾼다!" 뒤에서 행진하던 모두가 따라했다. 그때부터 이는 페미존의 구호가 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세상을 바꾼다.
2016년 10월 29일:
낙태죄 폐지를 위한 제2차 검은시위에 참가한 페미당당 친구 몇몇이 박근혜 퇴진을 위한 촛불집회에 페미당당 깃발을 들고 나갔다. 반 이상이 평생 처음으로 대규모 집회에 나가는 것이었다. "딸 사교계 데뷔시키는 엄마 마음이네"라고 말했다고 하더라. 친구들의 촛불집회 첫 경험이 뿌듯하고 재미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경우엔 대학교 총학생회 깃발 아래가 아닌 곳에서 집회에 참여하는 것이 처음이었다. 예상밖의 일이 일어났다. 페미당당 깃발을 올린 대여섯의 "어린 여자애들" 무리를 접한 시위대는 희롱조의 말을 던졌다. 아저씨들은 우리를 계속해서 치고 밀쳤다. 그중 하나를 불러세워 사과하시라고 다그쳐야 했다.
마치 클럽에서 친구 허리를 잡으러 오는 남자를 막듯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무리를 보호"해야 했다. 잔뜩 긴장한 상태로 세 시간을 광장에서 보내고 집에 돌아오니 페미당당 트위터 계정으로 메시지가 와 있었다.
"오늘 페미당당의 깃발 아래에서 한 여성분이 남성을 거세게 밀치며 그만 좀 치라고 소리를 쳤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이 이야기와 함께 지금 한국의 페미니즘은 남혐에 가깝다는 식으로 이야기 했습니다."
사실과 무관하다고 답을 보내기는 했지만 당황스러웠다. 페미니즘 깃발을 올리면 무엇을 하든 욕을 먹는구나 싶었다. 다음 민중 총궐기에는 어떻게 해야할지 혼란스러웠다.
2016년 11월 12일 제1차 페미존:
페미존의 시작은 아주 소박하였다. 우리는 스스로를 지키고 싶었다. 더 많은 여성 혹은 페미니스트가 걱정 없이 시위 현장에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본래는 페미존으로 작은 집회를 열거나 대오를 형성해 함께 걸을 예정이 아니었다. 혼자 시위에 참여하기 무서운 분은 촛불집회 현장에서 페미당당 깃발을 찾아오시라는 소극적인 의도의 기획이었다. "혐오발언, 혐오문구, 폭언, 불쾌한 신체접촉 없는 페미존을 만듭시다"라고 적어 웹자보를 만들었다.
찾아오시는 분께 페미니스트 정체성을 담은 시위 용품을 선물로 드리고 싶었다. 페미당당 손피켓 세 종류를 급하게 인쇄했다. "페미가 당당해야 나라가 산다" "페미가 당당해야 대통령이 퇴진한다" "페미가 당당해야 부패정권 박살낸다"
깃발을 찾는 분께 피켓을 쨘 꺼내 선물로 드리는 정도를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언제 어디로 오시라는 공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모이는 시간 장소를 묻는 문의가 아주 많이 들어왔다. 엉결겹에 한국 페미의 상징이 된 스타벅스 앞에서 4시에 출발하겠다고 공지하였다.
약속된 시간에 스타벅스 앞으로 갔는데 페미당당 친구들은 모두 지각하여 아무도 안 왔다. (나는 이 얘기를 죽을 때까지 계속할 것이다!) 트위터를 보고 오신 낯선 분들과 함께 손피켓을 나누어 드렸다. 150장 뽑아갔는데 금세 동이 났다.
시위대 150명이 손팻말을 받으시고도 흩어지지 않고 페미당당 깃발 아래에 모여 있길래 사실 아주 당황했다. 이 분들을 다 어쩌나 싶었다. 그때 로한 기병대처럼 강남역10번출구가 도착했다. 그들이 "우리에게 확성기가 있습니다!"라고 외쳤다. 곧장 작은 사전집회가 열렸다.
얼결에 만들어진 사전집회에서 나도 발언했던 기억이 난다. 페미당당 손팻말을 챙겨서 경복궁역으로 나왔는데 어떤 남자분이 뒷통수에 박근혜와 최순실의 얼굴을 매달고 "언니야 뽕빼고 빵가자"라고 써붙이고 다니는 것을 목격하였다. 우리에게는 아주 친밀한 연대의 표현인 "언니"조차 그에게는 대통령의 권위를 깎아내리는 멸칭이 되었다는 사실에 분노하였다는 얘기를 하였다.
사전집회가 끝나고 광화문광장 본집회에 잠시 합류하였다가 6시에 시청 앞에서 시작되는 행진에 참여하기 위하여 자리를 이동하였다. 이 과정에서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와 함께 걷게 되었다.
시청역에서 다시 경복궁 방향을 향해 "혐오발언금지" 팻말을 앞세우고 걸었다. 중간중간 불쾌한 일이 많았다. 술취한 남성 노인이 페미존을 향해 몸을 만지려고 하며 다가오길래 뛰어가서 "선생님"이라고 하며 몸으로 막고 데리고 나가려고 했다. 우리쪽을 향해서는 괜찮다고 웃어보였다. 그분은 내가 "미스코리아처럼 예쁘다"며 핸드폰을 열어 사진을 찍었다. 페미존 사람들이 얼굴을 가려주었고 "혐오표현 하지 말라" "당신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며 막아주었다.
행진이 중간에 막혀서 안국역 방향으로 돌아가야 했다. 어찌어찌 경복궁 앞에서 정리집회까지 마쳤는데 페미당당 친구들이 모두 파김치처럼 지쳐있었다. 뒷풀이도 안 하고 헤어졌다.
나는 다른 쪽에서 행진하던 친구를 만나러 가서 일상적인 얘기를 하다가 뚝뚝 울었다. 친구는 왜 우는지 잘 이해를 못 했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왔고 우리를 너무 믿어주었다"라고 말했는데 감격해서 우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사실 "너무"에 방점이 찍힌 말이었다. 버거운 일이었다. 집엘 못 가겠어서 시청광장 구석에 서서 한 시간을 울었다.
2016년 11월 19일 제2차 페미존:
처음으로 여러 단체와 공식 연대한 페미존이었다. 페미당당, 강남역10번출구, 불꽃페미액션, 노동당여성위원회, 정의당여성주의자모임져스트페미니스트,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박.하.여.행., 우리는서로의용기당, 녹색당여성특별위원회, 범야옹연대, 안티파액션, 정의당여성위원회, 청년좌파, 해방이화정의당학생위원회,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무순, 최종 포스터에 포함된 단체깃발 기준)가 모이기로 하였다.
세종문화회관 앞 노동당 트럭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을 내주겠다고 하여 그곳으로 집결하였다. 트럭을 빌려 진행한 사전집회에서는 연대단체가 돌아가며 발언하였다. 페미당당 차례에는 메시지를 전하기보다 공지사항을 알리기에 바빴다. 혐오발언이나 혐오문구를 발견했을 때는 아카이빙과 항의를 위해 스탭에게 알려 주시고, 자신이나 주변에 문제가 생기면 바로 핸드폰으로 기록해 주시기를 부탁드렸다. 범죄나 부상이 생길 때도 바로 스탭에게 고지하기를 공지했다. 부상자가 생길 때를 대비하여 CPR 가능자가 준비하고 있었고 응급키트도 구비하였다. 가까운 병원 응급실 위치와 전화번호도 스탭간 공유하였다.
'😈''페'페티자경단' 스티커를 처음 만들어 사용한 페미존 집회이기도 했다. 1차 페미존에서 성희롱 성추행과 원하지 않은 신체접촉이 너무 많아서 우리가 자경단이 되어 "몸빵"으로라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후에 이 계획은 스태프를 단기간에 소진케 하는 한계가 있음이 밝혀졌다. 사실 계획 당시에도 이런 점은 어느정도 예상되었다. 하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었다.)
사전집회가 끝난 후 이동하여 본집회에 합류해야 하는데 세종문화회관 양 옆 길이 모두 막혔다. 페미당당 친구들은 큰 시위대를 이끌어본 적이 없어서 당황하였다. 사전집회자리에 앉아계신 연대체 분들께 문의하여 행진을 이끌어 주실 것을 부탁드렸다. 조계사 방향으로 돌아서 본집회에 합류하였다.
이때 광화문 광장에 앉아있다가 "미쓰박" 사건이 일어났다. 집회 무대에 올라온 발언자가 박근혜를 지칭하며 "미쓰박! 당신은 나의 대통령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페미존에 있던 모든 확성기가 동시에 올라가며 "미쓰박이 아니라 박근혜다!" "여성혐오발언 중지하라!"고 외치는 장면을 목격하였다. 미리 논의한대로 스탭들은 촛불집회 주최측에 항의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고백하자면 이때 무대 아래에서 외친다고 해서 무엇인가 바뀔까 싶은 의심이 있었다. 그러나 바로 다음 무대에 올라온 사회자가 혐오발언을 지적하고 사과하며 모두에게 평등한 집회를 진행할 것을 약속하였다.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본집회 참여시에는 혐오발언에 항의하는 우리를 비웃고 나눠준 스티커를 보란듯이 구겨 던지는 남자와 마찰이 있었다. 마무리집회에서는 다시만난세계를 틀고 춤추는 우리에게 아저씨들이 다가와서 "보기 좋으니 더 해봐라"고 요구했다. 결과적으로는 스탭 혹은 페미자경단으로 참여한 페미당당 친구들이 상처를 많이 받고 돌아가게 되었다.
2016년 11월 26일 제3차 페미존:
눈이 많이 내리고 추웠다. 부패정권 퇴진을 외치는 페미존에서는 세계여성폭력추방의날 파업을 함께 기념하기로 하였다. 페미존 전에는 지구지역행동네크워크에서 기획한 페미니스트 시국선언이 진행되었다.
제3차 페미존은 시작하기 전부터 무척 걱정이었다. DJ DOC가 여성혐오노래를 촛불집회 현장에서 부르려던 계획을 페미존 연대체가 항의하여 막았기 때문이다. 페미당당 페이스북으로는 욕설 댓글과 메시지가 쏟아졌다. 기자에게 전화도 매일매일 왔다. 우리는 자유로운 시민으로 광장에서 소리치기 위하여 페미존을 꾸린 것이라는 설명을 반복해야 했다. 집회에서 보면 패버리겠다는 협박이 등장하였으므로 긴장하며 광화문으로 나갔다. 그러나 사실 페미당당 친구들이 더 쎄므로...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이날 페미존에는 페미당당, 강남역10번출구, 불꽃페미액션, 정의당여성주의자모임져스트페미니스트, 노동당여성위원회, 우리는서로의용기당, 박.하.여.행, 안티파액션,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청년좌파, 해방이화정의당학생위원회, 동덕여자대학교페미니즘동아리WTF, 보건의료학생모임매듭, 알바노조, 징병제폐지를위한시민모임, 박근혜하야청소년공동행동, 조광사진관(무순, 최종 포스터에 포함된 단체깃발 기준)이 연대하였다.
세종로공원에서 진행된 사전집회가 아주 깊게 기억에 남았다. 사회를 맡아 일반 참가자의 신청을 받아 발언을 들었다. 오래오래 간직할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였다. 트랜스젠더 애인과 병원에 갔던 경험을 공유해준 청소년 청소수자나 성노동자로서 발언하신 분이 기억에 남는다. 영국에서 살다 왔는데 학교에서 한국어 발음때문에 놀림받는다며 "페미니스트는 외국인 혐오또한 반대해야 한다"고 발언하신 청소년의 목소리도 힘있었다. 전국디바협회도 함께하여 송하나를 위한 세계를 만들겠다고 말씀해 주셨다. 중년 운동가 한 분이 마이크를 잡으시곤 "저는 몇십 년 간 페미니스트로 살며 이런 자리를 기다려 온 것 같습니다"라고 말씀하신 순간은 절대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날은 경찰이 길을 아주 열심히 막는 덕분에 본집회 참여를 끝내고 행진하던 대오가 셋 이상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마무리 집회를 하기 위하여 다시만난세계와 촛불하나를 들으면서 헤어진 무리를 기다렸던 순간이 아주 즐거운 기억이다.
제3차 페미존을 준비하면서 사실 더이상 페미당당이 페미존을 꾸리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페미당당 친구들 모두가 극도로 지쳐 있었다. 다음 집회를 위해서는 다른 단체가 기획을 맡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를 전하였다.
그 후:
불꽃페미액션, 강남역10번출구가 차례로 다음 페미존을 주도하여 진행하였다. 전국디바협회 대표분이 "다음 페미존은 누가 맡아서 운영해 주시나요"라고 물으셔서 "전디협에서 이끌어 주시면 좋을 것 같다"고 대답한 기억이 난다. 전디협은 작은 단체라며 당황하시길래 페미당당도 페미존을 하면서 여러 도움을 받은 덕분에 처음으로 큰 집회를 진행한 것이었다고 말씀드리니 놀라셨다.
당시 이렇게 말하였다. "페당은 얘네들도 하는데 우리도 할 수 있어 <-의 역할을 맡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는 지금도 운동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목표이다. 잘 짜여진 조직이나 엄청난 경험이 없어도 좋은 친구들과 연대한다면 누구나 여기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 앞 탄핵파티:
페미존에서 들었던 세 가지 손피켓과 "나는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원한다" 스티커를 가지고 헌재앞에 나가 선고를 기다렸다. 탄핵 가결 소식을 들은 후에는 다시만난세계에 맞춰서 방방 춤을 추었다. 페미존 당시에는 "울지 않게 나를 도와줘"라는 구절을 계속계속 반복하며 광화문으로 나갔다. 오늘은 "언제까지라도 함께하는거야 다시 만난 우리의"를 크게 따라불렀다.
"아버지의 딸"이라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힘입어 당선된 대통령을 쫓아내게 되어서 굉장히 기쁘다. 페미니스트의 이름으로 함께하여 더욱 자랑스럽다. 평생 간직할 승리의 기억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