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827 연대발언: #우리에겐_페미니스트_선생님이_필요합니다
"남자와 여자는 평등합니다"
그 이상을 말해주는 선생님이 필요합니다. 저 말이 공허하며 심지어 틀렸다는 사실을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필요합니다.
여자 사원은 거의 뽑지 않는 직장에 취업을 준비하던 친구는 한숨쉬며 말했습니다. "차라리 중고등학생 때 남녀평등이라는 말을 하지 말지. 진짜로 평등한 줄 알아버렸잖아."
청소년기에 접한 젠더 교육이란 뻔한 것이었습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어떤 사람도 성별에 따라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 순진하게도 그 말을 믿었습니다.
청소년기에는 내가 여성이라는 사실이 이렇게나 중요한지 몰랐습니다. 중고등학생때 접했던 시스템은 학생의 젠더/섹스를 지우려고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그런 뒤틀린 세계에서 무성에 가까운 존재로 살던 저는 "여자"라는 정체성이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새내기가 되자마자 저는 "여자" 동기 혹은 "여자" 후배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초면에 남자친구 유무를 물었습니다. 화장이나 옷차림을 품평했습니다. 여자애가 왜 밤늦게 놀러 다니냐고 타박했습니다. 성별은 갑자기 나를 옥죄기 시작하였습니다. 그저 한 살 더 먹었을 뿐인데 말입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갈 때가 되자 내가 여성이라는 사실은 점점 더 중요해졌습니다. 열심히 노력하면 뭐든 할 수 있다고 가르쳐놓고선, 여자라서 못 하는 것이 이렇게 많으면 어쩌라는 걸까요. 속은 기분이었습니다.
꿈같은 말을 믿지 말라고 말해주는 선생님이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집요하게 닥쳐오는 대상화에 의연하게 대처하고 저항하는 방법을 미리 익혔더라면, 사회는 나의 성별을 환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찍 깨달았더라면. 나의 이십대는 조금 더 자유로웠을 것입니다.
젠더 운동장은 기울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려줄 선생님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접할 사회는 평등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해줄 선생님이 필요합니다. 세상에 맞서 싸우기를 격려하며 이는 고된 일임을 경고할 선생님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싸움은 결국 승리로 끝날 것이라 약속해줄 선생님이 필요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에겐_페미니스트_선생님이_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