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106 기숙사 민원: "동미팅" 행사 개최 반대에 대한 안

"동미팅" 행사 개최 반대에 대한 안

A동에 살고 있는 원생입니다. 지난 10월 27일 토요일 저녁 시간 기숙사 공지용 플러스 카톡에서 알림을 받았습니다. 

기숙사 같은 동에 사는 학생들간에 미팅을 하는 행사인 "동미팅"을 할 예정이니 원하는 사람은 신청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동미팅 신청을 받기 위해 배포된 구글 폼에 기입된 공지와 선택사항 설명을 모두 찬찬히 살펴보았습니다. 그 결과 동미팅은 이성애/유성애 중심적인 행사 기획이며, 신청을 위해 학생들에게 배포된 선택사항의 서술 내용 또한 문제가 많다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조교님께 전화해서 "저는 레즈비언인데요. 저도 이 행사에 참여할 수 있나요?"라고 물어보았습니다. 조교님은 "그런 점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이 아니지만, 동미팅은 우선 해당되는 사람들끼리 참여하기 위한 행사"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는 눈물나도록 일상적으로 겪어온 차별의 모습이었습니다. 차별과 배제가 "너희는 탈락이야!" 라는 공격적 형태로 나타나는 일은 생각보다 흔치 않습니다. 오히려 차별은 현상에 존재하는 모든 대상을 "보편적인 사람"으로 가정하고 소수자에 대한 "특별한 배려"가 없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소수자는 끊임없이 배제당합니다. 

동미팅 공지를 살펴보았을 때, 동미팅은 "지난 1학기 B동 - C동의 남녀 15 대 15 동미팅"이 있었음을 알리며 "남녀" 한 쌍을 이루기 위한 행사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후 등장하는 질문인 "현재 사귀고 있는 남자친구/여자친구가 있습니까?"라는 사항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우리 주변에 성소수자가 얼마나 있을지는 알지 못합니다. 배제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성소수자들은 자기 자신까지도 속이곤 하기 때문입니다. 흔히들 (보수적인 통계 기준에 따라) 인구의 10분의 1은 성소수자라고 하지요. 그렇다면 동미팅 공지를 보고 익숙한 소외감을 느낀 학생은 우리 기숙사에 적어도 10명 중 1명은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명을 위하여 동미팅 행사를 진행해야 할까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배려는 가장 구석진 곳을 향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동미팅 공지에 서술된 내용은 이성애/유성애 중심적인 행사로 기획되었다는 점 이외에도 젠더감수성적으로 여러 문제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를 짚자면, 동미팅에 참여하기 위해서 학생은 성별을 "남자/여자" 중 하나로 선택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공지는 "제발 정확하게" 성별을 선택하라고 쓰고 있습니다. 이는 자신의 성별을 편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 한 쪽 성정체성을 선택하기를 거부하는 사람, 성별을 변경한 사람 등 젠더퀴어를 배려하지 않은 표현입니다. 

최근 트랜스젠더는 물론 "제 3의 성"이나 "무성" 등, 이분법적 성별 구분으로 나눌 수 없는 젠더를 자신의 정체성으로서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점점 더 드러나고 있습니다. 

독일은 2017년부터 "제 3의 성"을 공식 인정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독일 연방헌재는 "성정체성 강요는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결 내렸습니다. 국내에서도 행사 참석 설문지 등에서 젠더를 물을 때 직접 기입할 수 있도록 칸을 비워두거나 "여자/남자"에 더해 "기타"나 "대답하고 싶지 않습니다" 등의 선택지를 마련하곤 합니다. 

사회적으로 정해진 성별을 "제발 정확하게" 기입하라는 서술은 그 자체로 젠더퀴어에게 억압과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동미팅 공지의 표현은 젠더퀴어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들의 소수자성을 배려하는 사회 진보의 흐름에 역행하였다고 생각합니다. 

기숙사는 학교에서도 특히 안전하고 포용적인 공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일상을 보내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매일매일 먹고 자는 곳이 내 존재를 지우고 나의 정체성을 배제한다고 생각한다면 그 곳은 나에게 과연 안전한 곳이 될 수 있을까요?

(* 윤혜와의 대화 중 얻어온 생각을 참고. 관악사는 학생들이 거주하는 곳인만큼, 관악사 주최로 성소수자를 배제하는 행사는 더 문제적이라고 보여진다는 의견을 공유해 주었음.)

동미팅은 비공식이라고는 하지만, 학교 기관인 기숙사에서 학교 학생인 사생을 대상으로 개최하는 행사입니다. 따라서 이 행사는 일부 학생을 (특히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배제하거나 상처주는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나 행사는 다양한 성소수자를 배제할 뿐 아니라 서술 방식에 있어서 그들에게 상처를 주는 방식으로 기획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의견에 따라 동미팅 행사 개최를 반대합니다. 행사 취소를 고려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항의 결과 조교회의를 통해 행사 취소와 사과가 결정되었다. 조교는 내게 반대하는 의견을 글로 정리해 공유해줄 것을 요청했다. 의견서는 취소 공지와 함께 기숙사 플러스카톡에 게시되었다. 원생들이 단 댓글에서 내 의견은 "이기적이다"라는 평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