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112 기숙사 민원: "동미팅" 관련, 관악사 관장 A 교수님께

안녕하세요. 철학과 대학원을 다니며 관악사 B동에 2년째 거주중인 사생 심미섭입니다.
 
최근 관악사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알려드리고, 이를 계기로 관악사 조교와 입주생을 대상으로 학기 단위 인권 교육을 시작할 것을 요청하기 위해 연락드립니다.
 
얼마 전 제가 사는 B동에서는 기숙사에 거주하는 "남녀" 학생끼리 만나는 행사인 "동미팅"을 개최한다는 공지를 카카오톡으로 보냈습니다.
 
저는 성소수자 당사자임을 밝히며, 이 행사의 기획 의도와 진행방식이 이성애/유성애 중심적이며 소수자를 배제하고 있다는 문제를 제기하였습니다.
 
문제 제기 이후 조교 회의를 거쳐 "동미팅"은 취소되었습니다. 조교님은 제게 행사를 반대하는 의견을 글로 정리해 공유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제 의견서는 행사 취소 및 사과의 말과 함께 카카오톡 공지에 게시되었습니다. 제가 작성한 의견서를 읽어보신다면 이 행사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여 취소를 요청했는지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조교님은 이 과정에서 제가 글을 작성해줄 수 있는지, 글을 공유해도 될지 저에게 미리 물어보셨습니다. 조교님의 대처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동미팅" 취소 공지와 제 글이 공개된 이후 학우들의 반응은 제 예상과는 달랐습니다. 카카오톡 공지로 배포된 제 글에는 "이기적이다"라는 댓글이 달렸습니다. 기숙사 1층 엘리베이터 옆에 있어서, 건물을 드나들 때마다 확인하게 되는 자유게시판에는 "이성애를 존중해 주세요"라는 글이 적혔습니다.
 
같은 건물에 사는 사생들이 이처럼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생각을 하고 있으며 이를 표출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는 점에 놀랐습니다. 저는 이를 단순한 환멸을 넘어 실질적인 위협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카카오톡 공지를 확인하기가 두려웠으며, 기숙사에 들어갈 때마다 화이트보드에 혐오발언이 적혀 있을까 걱정했습니다. 기숙사가 더 이상 저에게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아니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결국 저는 짐을 챙겨 캐리어를 끌고 나왔습니다. 이후 며칠 동안 기숙사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관악사에 입주하는 학생은 기숙사에 살면서 겪을 수 있는 각종 위험 사항에 대처하기 위한 교육을 온라인으로 받습니다. 매 학기 화재 대처 훈련이 있고, 겨울에는 학생들의 방에 조교가 직접 방문해 화재 위험이 있는 물품이 있는지 확인하고 벌점을 부여하기도 합니다. (이 글의 논점은 아니지만, 이렇게 개인 방에 들어와 소지품을 검사하고 화재 위험을 단속하는 방법은 사생활 침해이기 때문에 금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점을 이 기회를 빌려 말씀드립니다.)
 
이처럼 관악사가 사생들의 안전을 걱정한다면 화재위험 말고도 다른 여러 요소가 입주자의 신체적/정신적 안전을 위협하고 있음을 인지해야 할 것입니다. 소수자에 대한 위협과 배제가 이 중 하나입니다.
 
성소수자 청년이 안전한 공간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돕는 영국 시민단체인 Albert Kennedy Trust에서 조사한 결과, 영국의 청년(16-25) 노숙자 중 24퍼센트는 성소수자입니다.* 이는 가정에서 안전한 환경을 보장받지 못해 집을 떠나오는 성소수자가 이성애자의 경우보다 훨씬 많음을 의미합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진보적인 편인 영국 상황이 이렇습니다. 우리나라의 성소수자가 얼마나 불안정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이런 상황에서, 다른 시설도 아니라 ''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관악사는 소수자에게 배제, 차별, 혐오발언 없는 안전한 환경을 갖추어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관악사를 모두에게 안전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요청합니다.
 
1. 관악사 입사 당시 및 학기마다 실시하는 온라인 오리엔테이션에 소수자 인권 교육을 추가할 것. 조교는 물론 전 사생에게 필수로 이수하게 할 것.
 
내용은 서울대학교 인권센터에서 제작해 서울대 구성원을 대상으로 이미 실행하고 있는 인권교육을 기본 바탕으로 할 것. 단 관악사에서 공동생활을 하는 사생 간에 있을 수 있는 일상적인 인권침해인 여성혐오, 성소수자혐오, 외국인혐오 등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지와 이것이 왜 잘못된 일인지에 대한 내용을 주로 다룰 것.
 
2. 관악사 사생 대상으로 인권침해 실태 전수조사를 할 것. 조사서 내용을 구성하기 위한 자문은 서울대 인권센터에 맡길 것.
 
3. 관악사에서 실시하는 특강 중 일부 강연을 소수자 인권 운동 활동가, 변호사, 지식노동자 등 전문가에게 맡길 것.
 
앞으로 한국 사회에 모두에게 안전한 공간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질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소수자에 대한 이해와 그들을 위한 배려가 필수적일 것이고요. 이번 사건이 안전한 관악사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위해 제 요청을 가벼이 여기지 않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심미섭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