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126 페미니스트 시국선언: 페미가 당당해야 나라가 산다
페미니스트 시국선언
페미가 당당해야 나라가 산다.
우리는 늘 믿어왔습니다. 페미니스트가 당당해야 나라가 살아납니다. 페미니스트가 목소리를 내야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없애고, 사회 모순을 해결하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고, 모두가 자유로워집니다.
우리는 나라를 살리기 위해 광장으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곳에 페미니스트를 위한 자리는 없었습니다. 우리는 부패한 정권은 퇴진하라고 소리쳤습니다. 집회 장소에서 소주를 마시던 시위대는 “아가씨들이 기특하다”고 등허리를 만졌습니다. 우리는 서로 지키기 위해 깃발을 들고 시위에 참여했습니다. 시국 파악도 못 하는 “페미나치”라는 비아냥을 들었습니다. 더 많은 단체를 모아 ‘페미존’을 꾸려 거리로 나갔습니다. 집회 사회자의 혐오 발언을 지적하였더니 콧방귀를 뀌며 시비 거는 젊은이를 만났습니다. “미스코리아처럼 예쁜 학생들이다”라며 다가오는 아저씨를 상대해야 했습니다.
페미가 당당하기도 나라를 살리기도 힘든 시기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광장에 나와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페미니스트가 당당하지 못하면 이 나라는 절대 살아날 수 없습니다.
시위에 참여하는 여성을 “예쁜 딸”이라고 부르며 눈요깃거리로 여기는 사람들이 만든 나라는 모두에게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저잣거리 아낙네” “닭년” “미스 박” “순실이”를 몰아낸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여성혐오를 거리낌 없이 표출하는 무리가 그들만의 광장에 모여 정치를 바꾼다고 한들 이 나라는 살아나지 못합니다.
부패 정권이라는 해일이 밀려오고 있습니다. 뛸 힘이 있는 사람은 다른 이를 마구 밀며 도망갑니다. 넘어진 자를 일으키기 위해 손을 뻗는 우리를 보고 누군가는 조개를 줍는다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조개를 줍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해안에 남아 대피신호를 쏘아 올리는 사람입니다. 구명보트를 띄우고 해일 속으로 뛰어드는 사람입니다. 소외되고 차별받아 뒤쳐진 마지막 한 명까지 구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페미니스트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세상을 바꾸어야만 이 나라는 살 수 있습니다. 죽어가는 나라의 광장에서 그 어느 때보다 확신을 가지고 외칩니다.
페미가 당당해야 나라가 산다!
2016년 11월 26일 토요일
페미당당
(심미섭 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