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산문 낭독: 불교와 섹슈얼리티: 살이 문드러지고 썩어 없어져야만

 살이 문드러지고 썩어 없어져야만


 부처는 제자에게 말했습니다. 너희들은 속세를 떠나 머리를 깎고 맨발로 걸으며 수행에 정진해야 한다. 그래야만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불교에서는 인생이 고통이라 합니다. 이 고통을 끝내는 것이 수행의 궁극적 목적입니다. 고통은 왜 생기냐? 잘못된 집착 때문에 생깁니다. 다들 눈을 감고 나는 무엇에 집착하는지 생각해 봅시다.


 무엇에 집착하고 계세요? (청중에게 질문) 부와 명예, 혹은 가족이나 우정 혹은 건강… 무엇이든 집착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이들에서 벗어나야 우리는 비로소 깨달음을 얻고, 괴로운 삶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부처의 제자들은 무엇에 가장 집착했을까요?

 아마 여자였나 봅니다.


 육욕, 혹은 색욕이라고 고상하게 표현했지만 사실은 그냥 여자랑 자고 싶어서 괴로움에 몸부림 치던 제자들을 위해 부처는 제안했습니다. 그럼 이런 수행법을 써보면 어떻니. 


 부처는 제자들을 공동묘지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 공동묘지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좀 다릅니다. 인도에선 갠지스강 옆에서 시신을 태운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으시죠. 이 화장 문화는 고대부터 이미 정착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옛날에 어떻게 인간을 뼛가루가 되도록 활활 태울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부처 시대의 공동묘지는 말이 묘지지, 사실 시체가 널린 터에 가까웠습니다. 


 공동묘지에 간 제자들은 시체 하나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젊고 아름다운 여자 시체를 골라라. 부처는 지시했습니다. 앞에 앉아라. 시체가 완전히 썩어 없어질 때까지 그 모습을 지켜보아라. 


 그냥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위대하신 부처가 지시한 수행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엄격한 관찰 방법과 단계 구분이 있었습니다. 관찰해야 할 부위는 머리털, 몸털부터 침, 콧물, 관절활액, 오줌에 이르기까지 32개, 시체의 부패 단계는 9가지에 달했습니다. 


 혹 지금 이 자리에도 지나친 성욕으로 괴로움에 시달리고 계신 분이 있나요? 위대한 부처가 제시한 수행 방법을 읊어 드릴 테니, 차근차근 함께 따라하며 집착에서 벗어나 봅시다.


 우선 여러분이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미인, 정확히는 미녀, 아, 죄송합니다. 너무 부처, 혹은 레즈비언 중심적으로 생각했지요. 그냥 완식 누군가를 생각해 봅시다. 떠올리셨나요? 그럼 그 사람이 죽어 누워있는 모습을 상상하고, 다음 순서대로 그 몸의 변화를 관찰합니다:



 시체의 부패를 관찰하는아홉 가지 공동묘지의 관찰 공동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1) 부풀고 검푸르게 되고 문드러지게 되는 것을 보고, (2) 시체들이 각종 새와 동물들에게 뜯겨지는 것을 관찰하며, (3) 시체가 해골이 되어 살과 피가 굳어지며 힘줄에 얽힌 것을 바라보며, (4) 살은 없고 아직 피는 남아있는 채로 힘줄이 얽힌 것을 보고, (5) 살도 피도 없이 힘줄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보고, (6) 백골이 되어 뼈들이 흩어져 있는 것을 보고, (7) 백골이 되고 뼈가 하얗게 되는 것을 보고, (8) 무더기가 되는 것을 보고, (9) 뼈가 삭아 가루가 되는 것을 보는 단계의 과정을 보며 몸도 또한 그러하리라고 생각한다.”


 전재성 , “맛지마 니까야”, 한국빠알리성전협회, 2020, 176.



 어떻습니까? 아무리 완식인 사람이라도, 백골이 진토되는 모습을 상상하니 성욕이 싹 사라져 버리나요?


 이러한 수행법을 부정관(不淨觀)이라 합니다. 부처가 살아생전 제시한 주요한 불교의 수행 방법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왜 지금 스님들은 공동묘지가 아니라 절에 모여 있는 걸까요? 부처의 가르침을 무시하는 걸까요?


 사실 부처는 이 수행법을 금방 취소했습니다. 왜냐면, 공동묘지로 보냈던 제자들이 수행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처가 대신 제안한 수행법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숨쉬기를 이용한 명상법입니다. 상당히 극단적인 방법 전환이지요?


 어쨌든 이 끔찍한 이야기를 통해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입니다. 부처의 최초 제자들이 마주한 깨달음의 큰 장애물이란 게 성욕이고, 부처는 남의 몸이 썩어 없어지는 과정을 살펴봐야만 욕구를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거죠. 설상가상으로 그 과정에서 수행자들은 미쳐 죽어버렸고요.


 위대한 성인의 길을 걷는 삶이라 해도 별 다를 것이 없지요. 여기… 코끼리라는 이름의 게이맨 클럽…에 모여 있는 우리들의 인생과 말입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사람들이 동성애를 혐오할 때 너무 성적으로 우리를 몰아세우곤 하죠. 그럼 누가 남자 역할이냐. 고추도 없는데 어떻게 섹스를 하냐. 이렇게요. 그러면 우리는, 아니 우리도 그냥 사람일 뿐이다. 그냥 여자를 좋아하는 여자일 뿐 다 똑같다 이렇게 대답하고요.


 그런데 유성애자 퀴어인 우리는, 솔직히, 좀 섹스에 집착하고 있지 않나요? 그것이 사실 우리를 정의하는 데에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지 않나요?


 그러니까 이런 얘기죠. 왜 퀴어 퍼레이드에서 굳이 벗냐고, 노출증이냐고 비아냥대는 말에, 아니! 뭐, 더우니까. 안전하니까. 이렇게 답하지만, 그리고 그것도 맞는 말이지만, 그래도 그냥 팔리고 싶은 마음도 있잖아요. (그리고 노출증도 맞는 듯!)


 암튼, 유성애자 성소수자라는 이름의 성중독자 여러분, 조금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갑시다. 그리고 레즈비언 여러분, 코끼리라는 클럽은 있는데 전복이라는 클럽은 없나요. 우리도 좀더 힘을 냅시다. 조금 자신의 성욕을 살펴보고, 받아들이고, 누가 뭐라고 하면부처와 제자들도 살이 문드러지고 썩어 없어져야만 비로소 사라지는 것이 성욕이라 하였도다라고 답해 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