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29 "해일 앞에서" GV
페미당당 활동을 다룬 전성연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해일 앞에서"(2019)에 대한 GV(네덜란드 예술공간 Extrapool 주최)에서의 구두 문답 한역본
1.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페미당당은 공동체로서 활동을 쉬겠다고 결정한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 또한 낙태죄 폐지 운동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낙태죄가 폐지된지 5년이 되었다. 그동안 한국 정부와 국회는 새로운 관련 법안을 만들어내는데 실패했다. 심지어 임신중지 약인 미프진조차 아직 한국에 수입되지 못한다. 한국에서 낙태는 더이상 불법이 아니지만, 또 합법이라고는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의료보험 체계를 가진 나라 중 하나이다. 하지만 여전히 낙태는 보험 처리 없이, 개인의 경제적 부담 하에 다소 은밀하게 진행된다.
어떤 사람들은 그래서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페미니스트 활동가로서 사실 내 삶은 꽤 달라졌다. 나는 거의 매주 “어느 병원에서 낙태 수술을 받을 수 있는지 알려달라”는 다이렉트 메시지를 받곤 했다. 하지만 요즘은 대형 프랜차이즈 산부인과들에서 비교적 쉽게 임신중지를 할 수 있다. (물론 역시 비밀스럽고 때때로 위험하기는 하지만)
또 중요한 부분이 있다. 낙태죄가 폐지되던 날 밤, 나는 몇몇 친구들의 전화를 받았다. “사실 몇 년 전 낙태했는데, 당시 남자친구가 그 사실을 안다. 혹시 그가 신고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불안했다. 이제는 마음이 편해졌다, 고맙다.”
페미당당에 대해서는, 우리는 어떤 의미로든 함께라고 말하고 싶다, 아니 그렇기를 소원한다. 어떤 친구들은 단체를 탈퇴하거나 서로 사이가 멀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일 년에 한두 번이라도 페미당당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응하는 시위에 나갔다) 나 개인적으로는 모든 친구들을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다.
2. 한국 정부와 사회는 구조적인 성차별을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한다. 입법부와 사법부와 같은 정부 권력 기관에 속해있는 이들은 대부분 남성이며 여성혐오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최근 발생한 딥페이크 범죄와 관련해 한국의 젠더 폭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딥페이크 범죄는 그 성적 학대가 주로 어린 여성에게 적용된다. 따라서 나는 그 피해자의 입장을 완전하게 이해하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 모두가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지는 않던 시대에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나왔기 때문이다.
지금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은 자신의 모습을 직접 찍어 올리는 일과, 학교 등에서 몰래 사진을 찍히는 사건 모두에 익숙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의 불안감에 나는 온전히 이입하지 못한다.
단순히 “세대 차이”라고 말하는 것 이상으로, 온라인 세계를 바로 그들의 모국-세계로 삼고 있는 이들과 나의 인식은 서로 다르다고 언급하고 싶었다. 그것이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는 성범죄를 내가 논의할 때 먼저 전제되어야 할 요소이다.
앞의 이유로 나는 현 세대 어린 여성과 소수자들이 겪는 두려움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위협을 가장 최대한으로 가정하고 싶고, 그것이 아마 현실과도 일치할 것이다.
피해자 중심주의의 입장에서, 어떤 일상도 안전하지 못한 지금 한국의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도 나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이들은 딥페이크 범죄가 “단순히 온라인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젊은이들의 세계관을 이해하지 못한 발언이라고 지적하고 싶다.
언론이나 정부는 딥페이크나 ai 기술이 무엇인지, 텔레그램이라는 메신저에 어떤 한계가 있는지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그러나 본질적 문제는 과거나 지금이나 똑같다. 한국 사회와 문화에 만연한 여성혐오다. 과거 교실 내에서의 여성 외모 순위 매기기, 남성 사회 속에서의 음담패설과 낄낄거림, 스토킹과 강간 위협 등이 온라인 세계에서 심화되었으며, 그 악랄함이 딥페이크 범죄로 드러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3. 아시아 여성으로서 유럽에 사는 것은 교차성 페미니즘을 매일 떠올리게 하는 일이다. 유럽에서 거주할 당시, 아시아 여성으로서 인종과 성별에 대한 문제들을 마주친 경험이 있었나? 그것은 한국에서 페미니스트로 사는 것과는 다른 경험이라고 생각하는가?
스무 살 초반에 프랑스 파리에 일 년 넘게 머물렀으며,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웃음) 비행기 환승을 위해서조차. (함께 웃음) 그곳에서 산책하면 내가 늘 “아시아 창녀” 취급을 받는다는 점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 시절에는… 몸서리치게 싫어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50유로에 어때?”라는 질문에 “너무 싼데?”라고 받아쳤던 적도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프랑스에서 마주한 태도는, 내가 여성, 아시아인이라는 사실 뿐 아니라 “창녀혐오”라는 맥락 또한 개입되어 있었다고 생각한다.
교차성 페미니즘의 창시자들은 “백인 여성들은 거울을 보면 인간이 아니라 여성이 보인다고 했지. 나는 여성이 보이지 않는다. 흑인 여성이 보인다.”라고 말했다. 나는 유럽에서 거울을 보면 아시아인 여성이 보인다. 하지만 창녀가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언제든 창녀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시아인 여성 창녀가 유럽에서 살아가기는 그가 아시아에서 살아가기보다 어쩌면 더 어려울 수도 있겠다고 감히 짐작한다. 나에게 교차성 페미니즘이란 내 정체성을 더욱 정교하게 만들기 위한 도구이기도 하지만, 나 말고 다른 약자, 소수자의 입장을 잘 이해하기 위한 수단이다.
따라서 교차성 페미니스트로서 나에게 이제 “유럽에서의 아시아 여성 대 아시아에서의 아시아 여성”이라는 질문은 다소 거대하고 따라서 모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그 둘은 많은 차이가 있겠으며, 페미니스트로서 살아가는 데에 유럽과 아시아는 장단점이 있는 장소일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어느 사회에서 살고 있는지 만큼이나, 어떤 몸-마음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가족 관계는, 성적 정체성은 어떤지, 심지어는 어떠한 인터넷 세계에 접속하는지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개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하고,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을 기반으로” 연대할 수 있는지를 논의해야 한다. 다소 교과서적인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웃음) 질문의 요지에 딱 맞는 답은 아니지만,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전달되었기를 바란다.
관객 코멘트: 한국에서 네덜란드로 이민을 떠나 살면서, 브래지어를 입지 않는 일부터 페미니즘 이슈에 대해 말하는 것까지 수많은 부분에서 자유로움을 느낀다는 관객 본인의 경험을 공유해 주심, 반면 유럽에 사는 아시아인 여성으로서 “수줍은 여자애(shy girl)”라는 고정관념으로 사람들이 자신을 대하는 것에 대한 불쾌감 또한 이야기함.
답: 내가 유럽에 살 때, 티셔츠를 하나 만들어 입으려고 했다. “수줍은 게 아니라 반사회적(not shy but antisocial)”이라고 쓴. (일동 웃음) 나는 그냥 사람들과 어울리기가 싫었을 뿐인데. 수줍어서 말을 안 하는 게 아니고 그냥 반사회적이라고! 여기 관객분들께 그 문구를 새길 티셔츠를 만드실 수 있는 무료 권한을 드리겠다. (일동 웃음)
4. 진행중인 페미니즘 관련 프로젝트가 있나?
현재 오토 픽션을 집필 중에 있다.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 최초의 진보 여성 대통령을 당선시키기 위한 선거 캠프에서 일했는데, 이때 겪은 일을 쓴 책이다. 가제는 “국회와 섹스”로서, “섹스”가 들어가는 이유는 당시 다소 강박적으로 퀴어 데이팅 앱을 사용하며 레즈비언 데이트를 했기 때문이다. (웃음) 나는 스스로를 퀴어 페미니스트로 소개하는데, 내 삶 속에서 이 두 정체성은 때때로 불화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예컨대 낮에는 낙태죄 폐지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밤에는 여성을 때리는 섹스를 한다거나. (함께 웃음) 바로 이 점을 책에서 잘 드러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관객 코멘트: 영어 번역 출판 계획도 있나?
답: 그랬으면 좋겠다! 거기 관객이 몇 명 있나? 그만큼의 예비 독자가 있다고 출판사를 설득할 때 이야기하겠다. (함께 웃음)
관객 질문 1: 페미당당에서 읽기와 쓰기는 어떻게 이루어졌나? 어떤 텍스트를 읽고 함께 익혔는지, 글을 쓰는 과정은 어떠했는지 궁금하다.
답: 아, 우리는 종종 세미나를 열었다. “페미나”라고 불렀는데. “버자이너 모놀로그” 함께 읽기같은 아주 개인적인 내용에서부터, 과학기술과 여성, 트랜스젠더 인권과 같은 사회적인 주제까지 폭넓게 다뤘다. 그 세미나에서 함께 읽거나 서로 추천한 책이 많은 공부가 되었다.
글을 쓰는 과정은… 입장문이나 매니페스토 등을 쓰게 되는 경우, 우선 한 명 혹은 두 명이 초안을 작성했다. 그걸 공유하고 의견을 물어보는 과정이 있었고, 기조를 수정하거나 내용을 덧붙이거나 해서 완성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다들 자기가 원하는 만큼 피드백을 꼼꼼하게 혹은 완벽하게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초안 작성자의 수고를 인정하고 그의 작업을 신뢰한다는 의미이기도 했고, 굳이 또 수정하는 노동을 하지 않기 위해서기도 하다. 그렇게 작업했던 이유는, 우선 우리는 돈을 안 받고 일했고. (웃음)
페미당당의 모토 중의 하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의 80 퍼센트만 하자”였다. 오랫동안 활동하다보면 지치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다시, 돈을 안 받고 일했고. (함께 웃음) 아무튼 그래서 페미당당의 글쓰기 방식은, 비록 완벽하지는 않아도 방향이 옳다면 모두가 만족할 만큼 피드백은 하지 못하더라도 그냥 넘어가고 발행하는, 그렇게 진행되었다고 기억한다.
관객 질문 2: 한국에서 열린 시위 등 페미니스트 활동에 유럽인들이 참여한 경우가 있었나?
답: 영화에도 나오듯이 네덜란드의 레베카 곰퍼츠(위민 온 웹 대표)와 함께 일했다.
낙태죄 폐지를 위한 검은 시위를 할 때 폴란드 페미니스트들과 실시간으로 협업했다. 검은 시위는 당시 폴란드에서 시작한 세계적 규모의 운동이었다. 한국의 검은 시위를 조직하던 중에 페이스북으로 연락을 받았는데, 한국에서 교환학생을 한 경험이 있는 폴란드 활동가인데 검은 시위를 처음 조직한 단체 소속이라고 하더라. 덕분에 양국 상황을 서로 공유하며 연대 시위등을 조직할 수 있었다.
참, 아일랜드도! 아일랜드의 임신중단권 시위와도 연대했다. 소중한 기억이다.
관객 질문 3: 영화에는 페미당당 멤버들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이 등장한다. 공동체 생활에서 이는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본다. 지금 공동체의 상황은 어떠한가?
답: 영화에서도 나왔듯 우리는 친구 사이에서 시작된 단체이다. 페미니스트 활동도 그렇지만 친구들과의 관계도 나에게는 무척 중요하다. 어쩌면 후자가 우선이라고 느낄 때도 많다. 페미당당의 구성원이나 전 구성원들은 여전히 서로 자주 싸우며 지낸다. 어떤 경우에는 연락을 안 하는 사이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가족같은 관계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 가족은 보통 말하는 의미와는 조금 다르다. 우리는 어떤 공동체 내에서의 관계가 끈끈해지면 “가족같다”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가족은 서로에게 큰 애착감을 가지고 늘 돕고 매일 연락하고… 그런 관계는 아니다. 오히려 자주 싸우고 오랫동안 연락을 안 하다가도 어느날 갑자기 만나게 되는.
나는 언니가 없지만 친자매가 있다면 그런 관계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친언니와 다투고 사이가 멀어졌다고 하더라도 만일 언니에게 수혈이 필요하다면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내 팔을 내어줄 것 아니겠나.
페미당당 친구들도 그런 관계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니 믿는다. 앞서 내가 일년에 한두 차례라도 시위 등에 연대 참여해서 단체의 명맥을 이어가려고 한다고 말했지 않나. 사실은 단체를 그렇게 살려 둔다면 결국에는 친구들이 다시 모이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있다.
누군가에게 혈액이 필요하게 되고 나는 그리고 다른 친구들은 기꺼이 헌혈을 준비할… 그런 날이 언젠가는 오지 않을까. 늘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