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08 한겨레 칼럼: '세월호 다큐 취소한 KBS…그 대단한 총선이 온다'
세월호 다큐 취소한 KBS…그 대단한 총선이 온다
2024-04-08
심미섭 | 페미당당 활동가·작가
2014년 4월16일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 한국인이라면 누구든 바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라 한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순간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아니다. 2014년부터 2년간 세월호와 관련된 기억이 통째로 사라졌다. 당시 대학생이고 이미 ‘운동권’ 비슷한 학생이었기에 분명 뉴스를 보고 있었을 테다. 가족과 친구들 중 팽목항까지 다녀온 이도 있고 누군가는 진상규명 촉구 시위에 나갔다는데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2016년 페미니스트 활동가로 나를 정체화하면서 세월호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늘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나? 세월호도 잊은 내가? 그해 새로 사귄 친구는 늘 팔목에 노란 고무 팔찌를 끼고 다녔다. ‘REMEMBER(기억하라) 20140416’이라고 쓰여 있었다. 여름이 지나면 햇볕에 그을린 팔에는 팔찌 모양대로 하얀 자국이 남았다. 친구의 노랗고 하얀 팔목이 세월호에 대한 내 첫 기억이다.
그 친구의 소개로 4·16구술증언팀에서 일하게 되었다. 세월호 참사에 관련된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기록하는 작업이었다. “자신의 이름보다는 단원고 몇 반 누구누구 엄마라고 써달라”고 부탁하는, 그렇게라도 자식 이름 한 번 더 남기겠다는 어머니들과 대화한 내용을 녹음하고 글로 풀었다. 그러면서 듣게 되었다. 세월호 소식에 바다로 향하던 부모들은 “전원 구조”라는 뉴스를 듣고 집에 들러 아이들 갈아입힐 옷을 챙겨갔다는 말을. 배에 탄 학생들은 “서로 팔짱을 끼라”는 지시를 잘 들은 탓에 팔뚝을 직각으로 접은 자세로 굳은 채 발견되었다는 말을. 팽목항 주민들이 “그냥 구명조끼 입고 바다에 띄워만 놨으면 살릴 수 있었을 텐데”하고 안타까워했다는 말을.
큰 충격을 받으면 기억을 잃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죽음을 마주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모두 다르다고들 한다. 구술 증언 사업에서 맡은 일을 모두 마치고도 세월호에 대한 기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제 나는 장례식에서 상주가 울지 않아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때로 무의식은 극단적 선택을 하는구나 짐작할 뿐이다. 그러나 슬픔을 추스르고 죽음을 받아들인 후 어떻게 살 것인가는 온전히 내 책임이다. 참사 이후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사건을 어떻게 기억할지에 대한 선택지가 주어졌다. 희생된 자들은 갖지 못한 두 번째 기회다.